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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아카이브/영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3/23 슬램 (SLAM, 1998)
  2. 2012/01/08 안토니아 (Antonia, 2006)

 

슬램 (SLAM, 1998)
감독:  마크 레빈
미국 l 103분ㅣ 드라마
제14회 선댄스영화제 (1998) 심사위원대상


 

원문: http://boysoftomorrow.tistory.com/962


Slam - 그와 그녀의 'Truth Poetry'


디제이 스푸키(DJ Spooky)의 타이트한 비트로 영화는 시작된다. 워싱턴 D.C 거리에서 마약을 파는 남자 '레이몬드 조슈아(이하 레이)’. 그는 시를 쓰는 동시에 프리스타일 랩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바로 직전에 레이의 친구는 머리에 총상을 입는다. 하지만 그는 먼저 교도소에 있던 친구 하퍼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지급하고 가석방된다.

영화 [슬램, Slam](1998)은 한 남자의 고뇌와 성찰이 가득한 영화다. 물론, 여자 주인공도 등장한다. 교도소에서 시를 가르치는 여자 '로렌 벨'은 한때는 창녀였지만, 지금은 교도소에서 시를 가르치고 쓰기도 한다. 로렌은 대립관계에 놓인 두 패거리 사이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레이를 보고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말을 건다. 그리고 그녀의 수업에 레이가 참여하면서 둘은 인연이 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주인공 레이는 자신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로렌도 과거 자신의 모습과 흡사한 레이를 도우며 시로 위로를 건넨다. 시를 쓰고 말하고 타인들과 소통하는 길만이 자신을 구원하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고 레이에게 말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힙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흔히 갱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총격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슬램]이 영화적으로 빛을 보인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또 다른 드럼이라 일컬어지는 랩(Rap)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단순히 내뱉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영혼에서 뿜어져 나온 단어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고, 그것이 우리의 귀에 전달되는 순간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가 흔히 힙합에서 말하는 '타이트한 비트나 라임'의 영화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간마다 등장하는 레이의 프리스타일 랩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로렌과 레이의 처절한 대화 장면(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장면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인 카페 '슬램'에서 보이는 레이몬드의 슬래밍은 [슬램]이 선댄스와 칸 영화제에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최고의 장면들이다. 그러므로 힙합, 아니 정확히 말해서 ‘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슬램]을 본 후,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 레빈(Marc Levin)의 연출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를 오가며 '드라마 베리떼'라는 새로운 방식을 낳았고, 연기자들의 호흡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액션과 리액션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사들은 흡사 리듬을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면서 배틀(Battle)을 보는 것 같은 진풍경을 연출한다. 그래서 [슬램]은 극영화지만, 굉장히 사실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카메라의 힘은 영화 속의 인물을 정직하게 찍고 있다는 느낌을 관객이 받을 때 비로소 명확해 지는 것이다. 흔들리는 카메라는 [슬램]의 모든 인물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불안이고, 마크 레빈은 매우 정확하게 그것을 포착해 냈다. 핸드헬드(handheld, 들고 찍기)가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화면은 흔들리고 때론 유리창에 카메라맨이 비치는 리얼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슬램]을 만들기 전까지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극영화인 [슬램]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간단하고 플롯은 매우 거칠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움직이고 줌과 아웃을 과감히 사용하며 클로즈업 샷으로 많은 화면에서 배우들의 얼굴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 얼굴 근육까지 자세히 촬영한다. [슬램]은 보기 드물게 엄청난 감정 과잉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단 한 장면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장면이나 편안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없다. 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슬램]이 힙합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슬램] 속 레이는 [8마일]의 지미를 떠올리게 한다-[슬램]이 먼저 제작됐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을 통해 지미와 같은 부류인 동시에 랩을 사랑하는 인물이 담긴 이미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두 영화는 모두 백인이나 흑인, 혹은 미국에서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그렸다.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더라도 그 본질이 있기 마련이다.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보고 흑인들을 비하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편집자 주: 백인감독이 흑인의 궁핍한 현실을 다뤄서인지 당시 ‘흑인을 비하한 영화’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존 싱글톤, 스파이크 리, 휴즈 형제가 말하는 방식과 마크 레빈은 다른 방식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어쨌든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고, [보이즈 앤 더 후드](존 싱클톤, 1991)부터 [클라커즈](스파이크 리, 1995), 그리고 [허슬 앤 플로우](크레이그 브로워, 2005)를 지나 2011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를 만난 지금까지 거리에서 마약을 팔고 랩을 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때때로 정직함을 담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레빈은 훌륭한 영화를 선보였다고 감히 단언하겠다.

Posted by seimo
TAG Slam, 슬램


안토니아 (Antonia, 2006)
감독 : 타타 아마랄
브라질 | 90분 | 35mm | 컬러 | 드라마
 


원문: http://wizaard.blog.me/20035791452


음악과 꿈이 있는 한, 친구들이 있는 한…
 
힙합 그룹 안토니아.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프레타, 바바라, 마야, 레나는 랩을 사랑하고 힙합가수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빼어난 가창력과 외모를 가진 그녀들이기에 지금은 비록 닥지닥지 지붕이 맞닿아 있는 달동네에 살고 있지만, 빛나는 내일이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그녀들 앞의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남성중심적인 힙합 음악계에서 여성랩퍼로 성공하기란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섹시한 몸놀림과 부드러운 음색으로 백코러스를 해 주는 것 정도지, 무대를 휘저으며 관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거친 랩을 퍼부어대는 랩퍼가 아니다. 더구나 가난과 폭력이 일상인 브라질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힙합이라는 꿈만큼이나 절실한 것이다.
그런 그녀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접을 수 없는 힙합에 대한 꿈과 그 꿈을 함께 키워온 네 명의 친구들이다.

네 친구들의 굳은 연대 역시 궁핍한 일상의 무게에 떠밀려 갈라지고 헤어지기 일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친구는 그녀들을 다시 일으키고 네 명의 아마조네스는 빛나는 힙합 전사로 무대에 선다.


자... 여기까지 보면 헐리우드 고난극복성공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드림걸즈>를 보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주워들은 풍문을 종합해보건대, 네 명의 여성맴버들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흡사할 것 같다. 뿔뿔이 흩어졌던 네 사람이 갈등을 극복하고 무대에 다시 서는 부분은 대충 해피엔딩으로 봉합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허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단점들을 충분히 덮어줄 만큼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운 힙합음악과 결이 살아 있는 브라질 빈민가 일상의 묘사가 가지는 힘은 강하다.

사실 힙합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여성랩퍼는 낯설다. 육두문자를 빼놓고는 도저히 그 맛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힙합을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거친 말놀이에 불편함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여성힙합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안토니아의 랩을 들으며 윤미래를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열여섯의 나이에 스무살이라고 속이며 무대에 처음 올라 지금까지 10년 동안 변치 않고 흑인 랩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녀. 반라의 의상으로 주구장창 웨이브댄스나 추든지 워우어~ 국적불명의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든지 하지 않으면 여가수가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윤미래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드렁큰타이거나 리쌍 같은 거친 남성 랩퍼들 사이에서 그녀는 위태로워 보였다.(나만 그렇게 느꼈나? -_-;) 그녀 옆에 다른 여성 랩퍼 한 명만이라도 든든하게 서 있더라면 안토니아처럼 그렇게 어깨를 걸고 거침없이 랩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 영화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쯧... -_-;;) 아무튼 하고 싶었던 말은 윤미래의 랩을 들으며 행복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안토니아의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 영화가 브라질 빈민가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본 이유는 사실 딱 한 가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과 공포가 떠나지 않았다. 프레타가 딸과 더불어 얹혀 사는 바바라의 집으로 가는 달동네 골목의 밤은 공포 그 자체다. 그곳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랩퍼라는 이유로, 게이라는 이유로, 살인사건이 저질러질 수 있는 장소다. 그 골목길의 불안감은 그녀들의 일상과 꿈을 갈갈이 헤집어 놓는다.

이 영화 속 어두운 밤의 골목길은 세상의 가지지 못한 자(여성, 빈민, 성소수자 등등)들의 불안과 공포를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인 이미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급작스런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서 관객들이 훨씬 행복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으니(아무리 현실이래도 계속 우울하면 너무 힘들잖아, 그런 영화를 어떻게 영화제 개막작으로 틀겠어. ^^;;) 그걸로 됐다. 프레타, 바바라, 마야, 레나, 그녀들의 감미롭지만 거칠고 힘 있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의 거침없는 랩에 극장은 일순간 해방구가 됐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Posted by sei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