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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아카이브/음악지식 2017. 12. 11. 21:22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이 무엇인지,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음악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생각한다. 음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한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Kiran Leonard의 [Derevaun Seraun] 음반이다. 잉글랜드의 1995년생 남성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2017년 음반이 음악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음반은 오늘 듣는 일곱 번째 음반일 뿐이다. 보컬과 건반, 바이올린 연주가 흐르는 음반의 두 번째 곡 <Living With Your Ailments>은 아름답지만 나는 이 노래 가사를 듣는 즉시 해석하지는 못한다. 음반에 수록된 노래 5곡 가운데 어떤 노랫말도 즉시 해석하지 못함에도 이 음반을 들으면 계속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컬과 건반, 현악기로 채워진 노래는 무수히 많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애절하고 정직한 보컬을 결합시킨 음악 역시 숱하게 많다. 그럼에도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분명히 내 마음을 흔든다. 왜일까. 그 질문은 결국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단지 노래하고 연주할 뿐인데,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가 날 뿐인데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익숙하지만 때로는 신기하다. 대체 음악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되었을까.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음악은 소리임이 분명하다. 음악에 가사가 쓰이기도 하지만 음악은 문자가 아니고, 피사체가 아니고, 몸짓도, 영상도 아니다. 음악은 오직 소리에만 의존한다. 그런데 음악의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가령 바람소리나 빗소리, 자동차 클락션 소리와 음악은 다르다. 이 소리들이 음악에 쓰일 수 있어도, 그 소리들이 곧장 음악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떻게 다른가. 음악에는 대개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다. 화음이 있고, 사운드가 있고, 톤이 있다. 눈 앞에 보여줄 수는 없지만 리듬과 멜로디, 화음, 사운드, 톤 같은 것들이 음악의 실체이다.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수행하고, 문자/음성언어와 구별되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그 언어와 방법론이 바로 리듬, 멜로디, 화음, 사운드, 톤 같은 음악 언어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 언어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 중 기본은 리듬이다. 음악은 근본적으로 리듬을 갖고 있다. 멜로디가 없는 음악도 리듬을 가지고 있고, 리듬만 있는 음악도 있을 만큼 리듬은 음악의 단단한 중심이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고대의 음악이나 많은 민속음악들은 실제로 리듬만으로 충분한 이야기를 표현해낸다. 한국전통음악의 중에서 사물놀이를 떠올려보면 안다. 북과 장구의 리듬만으로도 느리고, 빠르고, 느려지고 빨라지는 기운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 가령 휘몰이 장단은 바로 장과 단. 즉 긴 리듬과 짧은 리듬의 교차로 자신을 만들어낸다.


    장단의 원리는 반복이다. 단 한 번 던져지는 리듬은 리듬으로 살아 있을 수 없다. 같은 리듬을 반복할 때 비로소 하나의 리듬은 자신의 실체를 구현할 수 있다. 같은 리듬이 반복된다는 것은 리듬이 스스로 누적되면서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리듬은 반복과 반복을 통해 박자라는 구조를 세운다. 박자는 속도와 여백 사이의 밀도를 조정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박자만큼 채워지거나 비워진다. 밀려나거나 당겨진다. 다급하거나 경쾌하거나 유장한 리듬의 차이는 그 안에 담길 이야기를 이미 결정한다. 가령 2박자의 다급한 리듬으로 게으름과 여유로움을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리듬에서 출발하지 않고 완성될 수 있는 음악은 없으리라. 우리가 혼자 노래를 흥얼거릴 때 우리는 멜로디만 흥얼거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멜로디 안에 항상 리듬이 내재해 있다. 모든 음악에서 리듬은 존재감이 명확하다. 힙합 같은 현대 대중음악에서도 리듬의 역할은 도드라진다. 말의 리듬이 힙합의 생명 아닌가.


    그러나 뼈대만으로 집이 만들어지지 못하듯 음악은 좀 더 정교한 언어를 요구한다. 리듬만큼 중요한 음악 언어가 바로 멜로디이다. 멜로디는 선율로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한 개의 음만 던져졌을 때에는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소리가 다른 소리와 어울리면서 이야기가 된다. 각각 한 개인 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멜로디는 무궁무진 달라진다. 그러므로 멜로디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물론 리듬 역시 장단의 관계로 만들어지지만 리듬은 상대적으로 더 고정적인데 반해, 멜로디는 훨씬 가변적이다. 음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어울리는지에 따라 멜로디의 이야기는 계속 달라진다. 세상에 이미 많은 음악이 있음에도 계속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멜로디의 무한한 가능성 덕분이다. 음악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코드/화음도 멜로디가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멜로디는 리듬을 기반으로 리듬이 그려놓은 큰 그림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리듬이 뼈대라면 멜로디는 얼굴이다. 뼈대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얼굴은 분장이나 화장, 표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멜로디는 음악이 언어라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음의 서사로 이야기를 재현한다. 멜로디와 리듬의 결합만으로도 대부분의 음악은 완성된다. 가사가 없어도 된다.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린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작품번호 67)의 앞부분을 떠올려보라. 몇 개의 음이 결합하고 리듬이 받쳐주는 것만으로도 곡은 거의 완성되다시피 한다. 음악에서 멜로디, 그 중에서도 테마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주선율이라고 할 수 있는 테마는 곡의 가장 핵심적인 멜로디로서 곡의 정서와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훨씬 길게 말해야 하는 내용을 음악은 단 몇 초의 멜로디와 리듬만으로도 재현할 수 있다는데 음악의 놀라운 신비가 있다. 물론 음악도 3분 이상의 길이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한 곡에 매혹되기 위해 늘 3분 이상의 시간이 다 필요하지는 않다. 한 곡의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는데는 단 10초도 충분하다. 그만큼 멜로디와 리듬은 압도적이다.


    그렇다고 리듬과 멜로디가 음악의 전부는 아니다. 가사도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음악 중에는 가사가 없는 음악도 많다. 가사는 사실 음악의 고유 언어가 아니다. 가사는 일상 언어나 운문 혹은 산문의 문학 언어에 가깝다. 그렇다면 뭐가 남았을까. 바로 톤과 사운드이다.


    톤은 빛과 농도 같은 것이랄까. 아니, 고유한 개성이라도 해도 좋겠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김치를 담그지만 하나의 김치도 똑같지 않듯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곡을 연주하고 불러도 연주하고 부르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노래하는 목소리 보컬부터 다르다. 가는 목소리, 굵은 목소리, 여린 목소리, 거친 목소리, 낮은 목소리, 높은 목소리, 맑은 목소리, 허스키한 목소리, 콧소리, 꺾기, 억양, 호흡 등등 수많은 목소리 톤의 차이는 음악을 개인화시키고 다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 톤으로 보컬과 연주의 주인공을 알아챈다. 톤은 소리로 찍는 인장 같은 것. 글로 말하자면 문체라고나 할까. 같은 음을 노래하고 연주한다 해도 각자 다른 톤 때문에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비로소 개성이 생긴다. 멜로디와 리듬을 구현하는 방식에서도 창작자의 개성이 묻어나지만 가창자와 연주자의 톤은 더더욱 숨길 수 없다. 우리가 특정 뮤지션을 좋아할 경우 그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리듬과 멜로디, 화음, 톤 등이 모두 합쳐져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사운드는 하나의 곡에서 사용된 소리의 총체이다. 리듬만으로, 멜로디만으로, 화음만으로, 톤만으로 곡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보컬, 기타, 건반, 드럼, 베이스를 비롯한 악기와 여러 소리가 다 합쳐져 빠르거나 느리거나,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담백하거나 끈끈하거나, 자연스럽거나 인공적인 소리가 완성된다. 우리는 음악을 즐길 때 곡의 리듬과 멜로디를 즐기기도 하고, 보컬의 톤을 즐기기도 하지만 결국은 완성된 소리의 질감 모두를 즐긴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록 음악 특유의 끈끈하고 거친 소리를 즐긴다.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포크 음악의 고유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사랑한다.


    사운드는 결국 장르와 연결된다. 모든 장르가 단일한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특정 장르는 특정 사운드의 자장 안에서 움직인다. 전자음악 사운드를 쓰는 포크가 드물고, 어쿠스틱 악기로만 연주하는 록 역시 드물지 않은가. 음악을 만들 때에 멜로디에도 신경을 쓰고, 가사에도 신경을 쓰고, 리듬에도 신경을 쓰지만 결국 그 소리들이 어울려 어떠한 소리의 집을 만들어내는지가 청각 예술로서 음악을 완성한다. 그래서 포크 음악은 대개 최대한 곱고 맑고 울림 깊은 소리를 내려고 하고, 록 음악은 최대한 거칠고 리듬감 넘치는 소리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조용필의 <단발머리>에서는 바로 뿅뿅거리는 소리의 질감, 즉 그 사운드가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 예스럽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매우 현대적이고 싱싱한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곡의 중심이 되어 멜로디, 리듬, 화음, 가사를 아우르며 <단발머리>의 사운드를 완성했다. 그리고 곡 안의 모든 소리들은 그 사운드를 위해 조율되고 통일되었다. 그러므로 사운드는 전체적인 질감이자 총합이다. 사람으로 치면 피부와 골격, 표정, 의상을 아우르는 인상이자 패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복을 입거나 양복을 입고, 특정한 패션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 패션이 만들어내는 질감을 향유하고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의 소리를 쪼개 듣고, 또 종합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이 들리고, 더 깊이 들린다.


    *고대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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