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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록 페스티벌의 시대는 끝났는가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아카이브/분석과 비평 2016. 9. 6. 23:48

    원문: http://www.vop.co.kr/A00001051935.html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록 페스티벌의 시대는 끝났는가


    2016-07-27


    지난 일요일날 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이하 지산밸리)에 다녀왔다. 7월 22일 금요일부터 24일 일요일까지 3일동안 열리는 페스티벌에 하루만 다녀온 셈이었다. 대중음악의견가라면 당연히 3일 내내 페스티벌을 지켜봐야 했지만 이런저런 일정과 피곤함 때문에 겨우 하루밖에 보지 못했다. 2012년까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보다가 그후로는 안산 M 밸리 록 페스티벌을 보느라 안산으로 향했기 때문에 4년만의 지산 방문이었다. 지산밸리의 많은 것들은 여전했다. 가방 검사와 티머니 충전도 여전했고, 비싼 음식 가격도 여전했으며 깃발을 흔들 수 없게 하는 시스템도 여전했다.


    그러나 빅탑스테이지의 잔디는 깔끔했고, 빅 탑 스테이지와 그린/레드 스테이지, 튠업 스테이지는 충분히 떨어져 있어 음향이 충돌하지 않았다. 올해 각별히 신경 쓴 무대미술은 페스티벌 분위기를 더 돋우었고, 적게나마 마련된 휴식공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올해에는 다양한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하면서 기존의 음악 페스티벌 형식에 변화를 주려고 한 점도 특기할만 했다. 일요일의 라인업 가운데 ABTB, 솔루션스, 김사월X김해원, 비피 클라이로(Biffy Clylo)의 공연은 모두 훌륭했다. 그 중에서도 대미를 장식한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공연은 올해의 내한 공연 가운데 엠83(M83)과 함께 최고로 손꼽을만큼 빼어났다.


    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가수 지코의 모습

    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가수 지코의 모습ⓒ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

    그러나 올해의 지산밸리에서의 주인공은 더 이상 록이 아니었다. 지산밸리 3일 기간동안 가장 많은 관객이 운집한 순간은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제드(Zedd)가 등장한 순간이었으며, 가장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 순간은 그 후 지코와 딘, 쇼미더머니X언프리티랩스타 출연진이 등장한 순간이었다는 후문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산밸리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과 함께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쌍두마차, 국내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선두주자로 자리잡는 동안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최고봉은 록 페스티벌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실제 티켓 판매량과 관객 수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이나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앞섰다해도 음악팬들이라면 당연히 펜타포트에 가고 지산밸리에 가야할 것만 같은 불문율이 작동했다. 그래서 음악 팬들은 매년 지산밸리와 펜타포트에 누가 오는지를 예상해보고 라인업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와 실망을 터뜨리곤 했다.


    하지만 국내 록 페스티벌의 실상은 달랐다. 펜타포트와 지산밸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페스티벌은 록 음악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2006년 펜타포트가 처음 시작했을 때 둘째날의 헤드라이너는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였고, 2007년 펜타포트의 첫날 헤드라이너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였다. 이 같은 흐름은 그 후로도 대동소이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걸그룹 미스에이와 지디 앤 탑과 태양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산밸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지산밸리가 시작되었을 때 둘째날 헤드라이너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였다. 2010년에도 첫째날과 둘째날 헤드라이너는 트립합 밴드인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과 일렉트로닉 팝 듀오인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였으며, 이 같은 현상은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록 페스티벌의 이름을 걸고 있었지만 온전히 록 음악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의 록 페스티벌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일본의 록 페스티벌도 그랬고, 해외의 대중음악 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한국에서 록 페스티벌은 본격화되면서부터 이미 순수한 록 페스티벌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펜타포트와 지산밸리는 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걸었을까? 그 사정은 주최측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던 이들이 록 음악 팬들이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명확한 흐름이 보이지 않는 팝 음악팬이나 주로 10대에 국한되었던 아이돌 팬들에 반해 록 음악팬들은 비교적 높은 연령대까지 포괄하며 록 음악 마니아로서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1960년대 이후 록 음악이 대중음악의 변화를 주도했으며 그 이유로 국내 음악팬들이 록 음악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서구에서 록 밴드의 콘서트가 가장 큰 규모로 팬들을 불러모으는 대표적인 대형 공연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중음악의 중심은 록이고, 음악 마니아는 록을 들으며, 록 밴드의 콘서트가 라이브 콘서트의 전형처럼 인식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포크, 소울, 리듬앤블루스, 힙합,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가 각광을 받고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무관하게 록이 대중음악의 중심이라는 상징을 획득하고 계속 지켜나간 것이다. 그래서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시작하면서 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에서 록은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계속 멀어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힙합과 리듬앤블루스를 비롯한 흑인음악 계열의 대중음악 장르들과 일렉트로닉이었다. 이 음악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청소년과 청년세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조응하며 록의 인기를 대체해나갔다. 펜타포트와 지산밸리에서 계속 일렉트로닉 뮤지션을 헤드라이너로 세운 것도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 현장 스케치

    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 현장 스케치ⓒ지산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

    하지만 변화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끌고 있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지산밸리도 아니고 펜타포트도 아니다. 서울재즈페스티벌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같은 재즈 페스티벌이나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같은 팝 페스티벌이다. 최근에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코리아 등으로 대표되는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이 무섭게 추월해버렸다. 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는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에 더 많이 운집하는 경향이다. 물론 펜타포트나 지산밸리에는 여전히 해외 유명 록밴드들이 오고, 여러 대중음악 페스티벌에는 록 밴드가 꼭 등장하지만 더 이상 록 페스티벌은 늘어나지 않는다. 늘어나는 것은 힙합과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이다. 국카스텐과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에 열광하는 이들도 물론 많지만 그들 역시 대세가 아니다. 국내 음원 사이트 차트에서 록 음악이 1위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못해 희귀하다. 현재 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음악은 계속 아이돌 음악과 힙합 혹은 드라마 삽입곡이다. 인디 신 안팎에는 여전히 많은 록 밴드가 활동하고 있지만 그 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밴드는 결코 많지 않고 그 수가 크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이러다보니 록 페스티벌의 시대는 끝났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록의 시대는 이미 끝났고 록이 가진 권력은 이미 이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록이 가진 유일한 자산인 상징성마저 힙합과 일렉트로닉이 가져가 버렸다. 록이 가졌던 젊음과 반항의 상징성은 힙합이 대체하고 있고, 록이 뿜어냈던 육체성과 욕망의 분출이라는 상징성은 일렉트로닉이 대신하고 있다. 그것은 록 음악의 방법론인 샤우팅과 일렉트릭 기타의 디스토션,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백비트가 더 이상 새롭지 않기 때문일까? 록 음악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다시 팬들을 불러모을 에너지를 다 써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기계음에 익숙한 세대에게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젊은 세대의 패션과 놀이를 비롯한 라이프 스타일이 힙합과 일렉트로닉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일까? 답은 결코 하나만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시장은 변했고 한 번 일어난 변화는 더 많은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 록 페스티벌은 아재로 통칭되는 중년남성들만의 동창회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은 끝내 낡고 늙고 사라지며 우리는 그 끝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대부분 그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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