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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리믹스'란?
    대중음악아카이브/음악지식 2015. 4. 15. 01:52

    원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1783


    나미와 붐붐에서 히치하이커까지…한국에서 '리믹스'란?


    2015.2.2



    원고를 쓸 때마다 글의 주제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다. '노동요'라 이름 붙여진 오늘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은 1월 30일에 발표된 히치하이커의 '11 (HITCHHIKER REMIX)'다. 2014년 9월 발표된 '11'의 음악과 영상을 히치하이커가 직접 리믹스했다. 이번에 발표된 리믹스곡은 중독성 있는 루프가 반복되는 미니멀한 원곡에 더치 하우스 신스와 아프리칸 하우스의 리듬이 섞인 곡이다. 원곡이 클럽에서 소비되기엔 새침데기 같았다면 '11 (HITCHHIKER REMIX)'는 보다 작정하고 클럽에 놀러 온 모양새다. 디제잉 할 때 '11'을 극찬한 디플로나 딜런 프랜시스 같은 음악가의 곡 사이에 믹스 해도 크게 위화감은 없을 것 같다. 다음 곡은 1월 9일 발표된 서태지의 'Christmalo.win TAK Remix'다. 지난 11월 열린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이 곡은 멜버른 바운스와 스카를 버무린 듯한 원곡을 훵키한 프렌치 하우스로 리믹스한 곡이다. 리믹스의 주인공 TAK은 리듬게임 프로듀서로 대중들에게는 케이팝 15곡을 3분 동안 매쉬업한 곡으로 알려졌다. 내가 디제이라면 저스티스의 'DVNO' 같은 곡 뒤에 믹스할 듯하다.



    나미와 붐붐 '인디안 인형처럼 (Mega Edit)'


    글을 읽는 이 대부분이 눈치챘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리믹스'다. 자, 우선 한국에서 '리믹스'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 쓰였는지 찾아볼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의 검색창에 '리믹스'를 입력해 보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기사는 1990년 4월 13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나미 5년 만에 바람몰이'라는 기사다. 이 기사에서 리믹스는 '반주에 악기를 동원하지 않고 기존 나미의 노래를 믹스시켜 반주 효과를 내는 이색 레코딩 작업'으로 소개되고 있다. 6집을 발표하고 트로트 스타일의 '미움인지 그리움인지'로 활동하던 나미는 '인디안 인형처럼'이 더 큰 인기를 얻자 이 곡으로 타이틀 곡을 바꾸며 88 서울 올림픽 공식 DJ로 활약하며 인기를 끌던 붐붐을 만난다. 이후 나미와 붐붐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인디안 인형처럼 (DJ Remix)] 싱글은 국내 최초로 발매된 리믹스 음반이다. 총 5곡으로 구성된 이 음반에는 원곡에 전자 음악 사운드를 첨가하고 보컬의 피치를 높인 '(Extended Version)'과 슈가 힐 갱과 데 라 소울의 브레이크 그리고 'La La Means I Love You'같은 곡을 샘플링해 원곡을 재구성한, 지금 시대라면 매쉬업이라 부를 '(Mega-Edit)', 붐붐의 랩이 들어간 '(Rap Version)' 그리고 원곡과 인스트루멘탈로 구성돼 있다. 곡을 리믹스 한 건 DJ 처리는 이름을 쓰는 신철이다. 신철은 여기서 춤과 랩 그리고 리믹스를 모두 한 셈인데 당시 한국 클럽에서 디제이는 가수처럼 이 셋을 모두 하며 일종의 '쇼'를 연출하고 팬을 모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Part IV'


    다음 기사는 1991년 8월 28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FM은 내친구'라는 제목의 기사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짧은 기사인데 내용은 이렇다. '리믹스 전문가인 유대영 씨가 출연해 가요의 리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실례를 들어 리믹스로 노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들려준다.' 유대영은 '인디안 인형처럼'의 리믹스에 참여한 디제이다. 그는 'FM은 내친구'와 '싱글벙글쑈' 같은 프로그램에서 리믹스 코너를 진행했고 이현우의 [꿈 (REMIX)] 싱글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2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받은 데모를 리믹스 해 틀었다. 이 곡을 들은 시청자의 신청곡이 이어지고 음반 도매상에서는 발매되지도 않은 음반의 문의가 이어졌다. 그 곡의 이름은 '난 알아요'. 유대영은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프로듀서다. (정확히는 프로듀스까지 모두 서태지가 했으나 방송 활동을 쉽게 하기 위해 유대영의 이름을 썼다고 한다.) 음반 발매 4개월 후 결별하기 전까지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을 봐줬다. 당시 그의 업무 중 하나는 방송에 나올 때마다 '환상 속의 그대'를 다른 버전으로 리믹스 하는 일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보고 배운 서태지가 자신의 곡을 직접 리믹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Taiji Boys Live & Techno Mix]는 5번 트랙까지는 라이브가 9번 트랙까지는 리믹스가 담겨 있는 음반이다. 6분 44초 동안 제대로 된 랩 없이 레이브 신스과 애시드 베이스 그리고 짤막한 랩 샘플로 이뤄진 파격적인 구성의 '환상 속의 그대 Part IV'가 수록돼 있다. 이후에도 서태지는 꾸준히 자신의 곡을 리믹스했지만 방송용으로만 쓰였고 따로 음반으로 발표하진 않았다.



    King Tubby 'Keep On Dubbing'


    질문을 좁혀서 '리믹스'라는 음악 기법은 언제 처음 시작됐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말 자메이카로 올라가야 한다. 당시 활동하던 킹 터비, 리 스크래치와 같은 위대한 프로듀서들이 믹싱 콘솔을 이용해 곡의 리듬을 부각하거나 이펙트를 이용해 원곡과 다른 버전의 곡을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은 덥으로 불리게 되는 데 이후 자메이카에서 발매되는 레게 싱글 레코드의 상당수가 A면에는 원곡을 B면에는 덥 버전을 싣는다. 이때 등장한 방법론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덥 음악은 이후 전개되는 댄스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믹스가 본격적으로 음악사에 등장한 건 1980년대.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를 라이브 밴드 대신 디제이가 차지하면서부터다. 클럽에서 디제이는 앞과 뒤의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사람들이 계속 춤을 출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했다. 디제잉은 연주가 아니라 재생이었기에 재생할 곡을 사전에 미리 작업할 수 있었다. '인디안 인형처럼'에 등장하는 '(Extended Version)'은 다음 곡과 연결하기 쉽도록 간주를 길게 늘린 걸 의미한다. 곡의 구간을 잇고 붙이던 에디트는 점점 디제이 본인의 스타일과 클럽에서 출력되는 음향의 성격에 맞춰 발전했다. 댄스 음악 그리고 클럽의 유행과 함께 리믹스 문화 또한 함께 성장했다. 



    철이와 미애 '뚜벅이 사랑'


    위의 문단에서 뺄 건 빼고 (Edit) 늘릴 건 늘려 (Extended) 리믹스하듯 내용을 재구성해보자. 1980년대 유행한 클럽에서 소비되는 디제이 중심의 댄스 음악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 활동했던 디제이들 역시 외국의 경우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곡을 리믹스 해 틀었다. 그리고 이때 종로, 강남, 이태원에서 활동했던 스타 디제이들은 90년대 들어 여의도에 입성해 음반 제작자가 됐다. 위에서 언급한 유대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어 듀스, 육각수 등을 음반을 프로듀스했다. 신철은 철이와 미애로 직접 가수로 데뷔한 후 유승준, 쿨, DJ DOC 등의 음반을 프로듀스하고 김창환은 라인기획을 설립해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 클론, 박미경 같은 댄스 가수를 제작했다. 국내 대중가요 계에서 '리믹스'는 이들이 가져온 신문물이었다. 이들과 함께 90년대 댄스 가요의 전성기가 찾아오지만 발표되는 리믹스 음반의 수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리믹스곡이 제작되지 않은 건 아니나 대부분 방송 퍼포먼스를 위해서만 쓰였다. 여기서 다시 위의 문장 하나를 가져와 보자. '댄스 음악 그리고 클럽의 유행과 함께 리믹스 문화 또한 함께 성장했다.' 맞다. 위의 상황에는 클럽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의 클럽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부킹을 하고 있었다. 부킹은 90년대 한국 클럽에 등장한 고유의 문화다. 



    요조 '춤(FIRST AID Remix)'


    프로듀서가 리믹스를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클럽에서 디제잉할 때 좀 더 잘 어울리게 곡을 에디트하는 것도 이유일 테고, 순수하게 기존 곡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창조하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전략적으로 기존에 존재하는 곡의 인기에 힘입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이유도 있다. 위 세가지 이유는 명확히 구분되기보다 혼재되어 있다. 90년대 국내에서 리믹스 음반이 활발하게 발표 안 된 것도 위의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클럽은 음악을 듣기보다 부킹을 하는 장소의 의미가 컸다. 자신의 창작욕을 발휘하기에는 당장 댄스 음악 프로듀서의 수가 모자랐던 시기에 곡을 파는 것만으로도 바빴을 것이다. 클럽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타 디제이 또는 프로듀서가 탄생할 수 없다. 댄스 음악은 유행했지만 그 안에서 정작 음악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시대의 단면이다. 



    티아라 'Sugarfree (DJ Beatrappa, Ferry, Tera)'


    클럽 앞에 붙은 '나이트'와 '박찬호' 명찰을 단 웨이터가 사라지고 음반 대신 음원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 한국에서 리믹스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우선, 이전보다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비록 콘셉트 일부로 소비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브라운 아이드 걸스, 시스타, 티아라 같은 아이돌 그룹이 리믹스가 포함된 음반을 발표하고 소녀시대는 'Kissing You'의 리믹스 대회를 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 신의 활약도 의미있는 지점이다. 2014년 가장 히트 친 언더그라운드 힙합 곡 '연결고리'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만큼 리믹스 됐다. 일렉트로닉 음악가가 리믹스곡을 음반에 삽입하거나 따로 리믹스 음반을 발표하는 것 역시 보기 어렵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전보다 프로듀싱과 디제잉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며 프로듀서 중심의 음악이 유행하고 이를 소비하기 좋은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생긴 덕분이다. 이는 세계 음악 시장의 흐름 또는 콘텐츠 유통 및 소비의 흐름이기도 하다.



    DJ KOO 'Let Me (feat. Hana) (Original ver.)'


    하나의 콘텐츠가 마이크로 단위로 나뉘고 이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조립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여기서 리믹스는 온전히 음악의 콘텍스트에 집중하는 유희다. 이 유희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얼마나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지 기대된다. 오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은 디제이늅의 '빠삐놈병神디스코믹스(feat. 디제이쿠, 전스틴, 엄기뉴, 이효리 등)'이다. 


    필자: 하박국(레이블 [영기획] 대표) http://www.younggiftedwack.com


    2009년도에 클럽에서 '환상 속의 그대'를 발티모어 댄스 스타일로 리믹스 해 디제잉했다. 지금은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웨이브]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그 돈을 모아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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