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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이 추천하는 대중음악 “여우는 어떻게 울지?”
    글/기고문 2014. 12. 12. 17:38


    글 박하재홍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사막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말한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교활한 짐승, 또는 구미호 같은 무시무시한 동물이 아니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어린왕자를 읽고 나면 여우를 애틋해 하고, 여우를 친숙하게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도대체 여우는 어떻게 울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노르웨이의 개그맨 듀오, ‘일비스’는 갑자기 여우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소는 음매, 고양이는 야옹, 개구리는 꼬록꼬록....... 사람하고 친숙한 동물들을 상징하는 소리가 있잖아. 여우는 왜 그런 소리가 없는 거야?” 여우 목소리? 동물학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가? 야생여우 복원센터를 방문해서 직접 관찰해 봐야 하나? 아니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라고!


      인터넷의 자료는 갈수록 방대해 지고 있다. 2천 년 대 초에는 검색해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쑥쑥 검색 창에 올라온다. 인터넷에서 여우의 대표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어라....... 그럴 수가 없다. 여우 목소리를 직접 기록해 놓은 영상들이 있지만, 여우의 목소리가 도통 일정하지 않은 탓이다.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어억어억~” “끼야오~” “꺅꺅꺅꺄~” 약간 목이 쉴 것 같은 고음의 음색은 무척 생소하다. 사람의 목소리로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범위다. 당황한 일비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은 여우의 목소리를 소재로 새로운 음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일비스가 부른 ‘여우는 어떻게 울지’가 탄생했다. 이 노래는 곧바로 세계적인 호응을 이끌었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공유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11월이 다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청소년의 추천을 받고서야 뒤늦게 감상한 것이다. “띠용~!” 뿅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매일 인터넷에서 새로운 정보와 음악을 흡수하기 즐겨하는 내가, 인터넷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중학교 2학년 학생보다 그물망이 느리다니! 이 노래가 단지 짧은 유행에 그치고 말 ‘돈만 밝히는 음악’이었다면,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문제는 충격을 받을 만큼 ‘좋은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과 어울리는 전자음의 향연, 시적인 노랫말, 동심을 이끌어 내는 후렴구는 환상적이었다. 화려한 사운드로도 내면적인 집중을 만들어 냈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날마다 무수히 쏟아지는 대중음악을 대충 대충 들어선 안 된다. 클래식이나, 전통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주로 듣는 음악이 대중음악이라면? 나름의 기준으로 좋은 음악을 가려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대중음악은 삶의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을 댄스와 발라드로만 나눠듣는 사고는 곤란하다. 음악이 지닌 위대한 힘을 체험하지 못하고, 상업적인 음악의 유흥성에만 휘둘릴 위험이 있다. 상업적인 음악은 감정을 자극할 뿐, 감정을 ‘변환’시키지 못한다. 슬픔을 아름답게, 화를 도전적인 힘으로, 신나는 기분을 정신적인 기쁨으로 변환시켜 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

      말로는 이해가 어렵겠지만, 감정을 변환시켜주는 좋은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다.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음악은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다.” 왜일까? 나의 정신이 샤워를 한 듯이 개운해지기 때문이다. 열 번 들었을 때보다 백번 들었을 때 더 좋다. 천 번을 들어도 새로움을 느낀다. 듣고 또 들어도 좋다. 우리가 명곡이라 부르는 곡들은 다 그렇다. 비틀즈의 ‘렛잇비’, 마이클잭슨의 ‘빌리진’만 해도 3~40년이 훌쩍 넘은 곡이지만, 지금의 십대들 또한 이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에 몰입한다. 방송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꾸준히 사랑받는 음악도 많다. 반면, 무수한 대중음악들은 그야말로 ‘반짝’이다. ‘반짝’은 돈과 유행을 제일로 쫓는 음악들의 속성이다. 그런 음악에 갇혀있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협소해 질 위험이 있다.

      인문계보다 이공계 계열 사람들이 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통계가 있다. 나도 처음엔 좀 의아했는데, 당연한 결과다. 음악은 수학이고 과학이기 때문이다.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의 유기적인 결합, 소리가 만들어내는 파동과 진동, 목소리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긴장감을 집중해서 들어야만 정신적인 기쁨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술에 취해서는 좋은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술기운은 음악적인 몰입과 집중을 방해한다. 술과 먼 청소년들이 술과 가까운 어른들보다 좋은 음악을 쉽게 알아차린다.


      청소년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음악전반에 관심이 부족한 이들은 청소년들 대부분 외모 위주의 아이돌 유행음악에 열광하는 줄 안다. 교사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나는 전국의 십대들 (주로 초등학교 5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의 추천음악을 써넣을 수 있는 종이를 건네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안한다. 음악이란 그냥 쉽게 말할 수 없는 보물 같은 거니까........ 하지만, 종이 위에는 기꺼이 적어준다. 내게도 이 추천 곡들이 보물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음악이 다채롭다. 내가 모르는 음악들도 부지기수다. 유행 가요만 즐겨듣는 학생들도 친구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음악에는 대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자연스레 관점이 넓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다짜고짜 교실에서 “무슨 노래 좋아해요?”라고 물어보면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빗발치기 마련이다. 일정한 비율의 열혈 팬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인원수에서 그 비율은 얼마나 될까? 여자중학교에서도 최대 3분의 1 정도다. 다른 종류의 음악을 찾아듣는 친구들은 조용조용하다. 종이를 주어서 써달라고 부탁해야 그제 서야 고심하면서 비밀스럽게 적어준다. 공중파 방송에 주로 나오는 대중음악들은 세상의 음악 중에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많은 십대들이 음악을 인터넷에서 찾는다. 세계적으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서 좋은 음악들을 찾아내고 정확히 기억한다. 2년 전부터 수집하고 있는 십대들의 추천 곡 목록이 그 증거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면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음악에는 예술성이 없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엑소의 팬이라면, 엑소의 노래들 중에 어떤 것이 최고로 좋은 음악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엑소의 ‘으르렁’은 분노와 짜증의 감정을 차분하면서 역동적인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십대들이 감정적인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내면의 에너지로 근접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걸 지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인문적인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또, 더욱 좋은 음악들을 찾아내는 요령이 생긴다. 문제는 으르렁을 그냥 시끄러운 유행음악, 십대들의 가벼운 취향 정도로 여기는 무지한 의견이다.

      대중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하는 때는 보통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나 또한 그랬다. 방황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 생겨났다. 알 수 없는 인생의 고독감이 느껴졌지만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불안하고 씁쓸했다. 대중 음악가들은 그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창작한다. 동요와 만화주제가를 벗어나 대중음악의 세계로 들어오는 그 시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본능적으로 그들의 감수성은 예술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악동 뮤지션’이 인형처럼 노래만 하는 가수보다는 왠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그 반대다. 술과 노래와 춤을 결합해 놓은 형태가 거리에 즐비하다. 단란주점은 무엇이 단란한가? 거리 곳곳에 유흥업소가 빼곡한데,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왜 드문가? 이런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중음악들은 십대까지 포섭하려 든다. “너도 이제 성인이 되면 유흥적인 생활과 친해져야 할 거야.”


      눈치 챘겠지만, 현재의 많은 여성 아이돌 그룹이 특히 그렇다. 1990년대까지, 유흥업소와 친한 음악은 트로트 계열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여성 아이돌이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아이돌 그룹 상당수가 목표로 삼고 있는 연령층이나 수익구조를 파악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다. 싸이의 ‘젠틀멘’, ‘행잉오버’ 또한 취기를 잔뜩 넣은 분위기로 유흥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받은 무수한 추천곡 중에 싸이의 젠틀맨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싸이의 지난 노래인 아버지, 챔피언은 종종 등장한다. 아버지 챔피언에는 취기가 없다. 또, 강남스타일 이전에 자신의 개성과 나름의 철학을 표현하려는 싸이의 태도가 들어있다.

      초등학교에서 교사들과 보호자들이 싸이의 젠틀맨을 틀어놓는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나는 이 상상을 현실로 보았다. 학교의 저작권 교육 또한 싸이의 젠틀맨 캐릭터를 예시로 든다. 저작권을 지키면 젠틀맨과 같은 컨텐츠로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논리다.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음악은 어떤 형태든 상관없단 말인가? 지난 해,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청소년들에게 젠틀맨 춤을 추게 하는 사진을 실어 놓기까지 했다. 나는 중2병에 걸린 얼굴로 진지하게 묻고 싶다. “문화와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문화와 예술은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젠틀맨이란 노래를 공격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대중음악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예술적 열망이 한데 뒤섞여 있는 장르이고, 이런 저런 취향의 각양각색 음악이 공존하는 영역이다. 젠틀맨보다 노골적인 유흥음악도 숱하다. 어떤 음악을 만들고 듣던지 그건 기본적으로 자유다. 단지, 십대들의 순수하고 멋진 예술적 감각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어른들이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 모순적이다. 학교 행사에서 무슨 음악을 틀 것인가, 운동회 응원가로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학교에서 음악 좀 듣는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결정하길 바란다. 미국의 중견 밴드, 마룬 파이브의 ‘맵스’와 우리나라의 80년대 밴드, 다섯 손가락의 ‘풍선’을 즐겨 부르는 제주도의 평범한 13살 소년은 지난 10월의 학교 운동회에서 걸그룹의 노래에 맞춰놓은 율동을 연습해야 했다.


      대중음악의 실험성과 예술성, 시대성은 늘 십대로부터 발전해 왔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에 랩과 힙합을 선보였을 때도, 이십대 중반 연령부터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상하다. 랩과 힙합은 1970년대를 살아간 십대들이 창조한 음악이자 문화인데, 왜 이들은 같은 또래의 랩과 힙합을 어색해 하는가? 그것은 자신 안에 십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십대들은 최근 새롭게 발표된 마이클잭슨의 신보를 들으며 전율을 느낀다. 마이클잭슨은 음악 안에 엄청난 선물을 담아두었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누구나 무대 위 마이클잭슨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마이클잭슨은 1958년생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중에 그 선물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이클잭슨과 비틀즈의 음악을 다시 회복한다면, 지금의 십대들과 음악적인 대화를 허울 없이 나눌 수 있을 텐데.

      동물의 문화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들의 연구사례를 살펴보면, 동물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일본의 원숭이 무리 사이에 고구마를 씻어먹는 행동이 전파될 때도, 나이든 원숭이들은 늦게 배우거나 아예 배우질 못했다. 나는 이것이 육체적 노화와 함께 ‘정신의 신선도’까지 상실되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천재 음악가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오래가지 못하거나 세속적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천재가 아닌 사람은 정신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예나 지금이나 십대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음악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깊이 있는 관점으로 조언해 줄 의무가 있다.

      가령 장기자랑 준비한다고, 유흥업소 색깔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순진한 여학생들에게 어른들은 어떤 조언을 선물할 수 있는가? 소녀들은 그런 모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표본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것을 열정이라, 재능이라 포장한 무대 아래에서 민망한 표정으로 구경하는 어른들의 얼굴은 혼란스럽다. 뭐가 뭔지 모른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좋은 춤이란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남에게 점수 따고 잘 보이기 위해 추는 건 예술성이 없다. 다행히 우리의 주변에는, 또 인터넷에는 남성 댄서와 1대1로 겨루기를 해도 밀리지 않을 수많은 여성 댄서들이 활동하고 있다. 음악과 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자료를 폭넓게 공유하는 자리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지난 2월부터 제주시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선 달마다 <제주힙합포럼>이 열리고 있다. 이 자리엔 랩을 연마하는 중학생부터, 한때 힙합과 사랑에 빠졌지만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삼십대까지, 또 힙합이란 강력한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십대가 한 자리에 어울린다. 1부에선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발표하고 2부에선 즉흥적인 힙합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대와 관객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 클럽의 바로 길 건너편 제주시청 골목은 괴상한 네온사인이 가득하다. 온통 유흥업소다. 쉽게 물러설 수 없다. 우리마저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십대의 마음을 지닌 ‘감상자’들의 관심을 한데 모아야 한다. 일상의 문화와 예술에선 발표자보다 감상자가 더 중요하다. 청소년들에게 재능 찾기란 명목으로 발표를 독촉하지 말았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 편히 감상하고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우선이다. 창작과 발표위주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세상엔 불행한 창작자도 많다. ‘쇼미더머니’에 도전한 많은 래퍼들은 왜 랩을 통해 스스로 불행해지고 있는가? 곰곰이 따져 보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감상자’로 사는 법이 우선이다. 그것이 곧 인문적인 삶이며, 괴상한 유흥업소들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20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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