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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 힙합의 역사 (글 양재영 장호연)
    힙합 아카이브/힙합 2012. 3. 5. 23:50
    웨스트 코스트 갱스터 힙합의 역사


    글/양재영 (cocto@hotmail.com)· 장호연 (ravel52@nownuri.net)


    퍼블릭 에너미처럼 이들은 전투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강경한 목소리를 설파하고 다녔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흑인들의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정치적인 코멘트와 더불어 힙합 공동체의 순수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룹 멤버중 한 명인 케이알에스 원 KRS-One은 '힙합의 교사 HipHop teacher'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폭력과 마약 사용에 대해 반대하였으며, 밴드 멤버였던 스코트 라록 Scott LaRock의 죽음을 계기로 '폭력 중단 운동 Stop the Violence Movement'을 설립하고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1989년에 그는 <뉴욕 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도 했다. 참고로 KRS-One은 Knowledge Reigns Supreme over almost everyONE(지식은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최고 권위를 지배한다)의 두문자어이다.

    이들의 데뷔 앨범 (1987)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기법을 통해 갱스터 랩을 예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그들은 샘플이 제공할 수 있는 세련되고 흥겨운 사운드 대신에 투박하고 황량한 사운드를 선호했으며, 리듬은 훅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성긴 형식으로 구성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 같은 리듬은, 당시 힙합의 순수한 본질만을 드러낸 미니멀리즘 미학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다소 현학적이고 강의식인 메시지에 부합하는 형식으로 생각되었다. 이후 케이알에스 원은 그룹 해체 후 솔로 활동을 통해 그의 정치적 입장을 리듬적인 혁신과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보통 본격적으로 갱스터 랩의 전형적인 세계를 개척한 그룹으로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N.W.A(Niggaz Wit' Attitude)을 꼽는다. 마약 행상으로 돈을 벌어 루쓰리스 레코드사 Ruthless Records를 설립한 이지 이 Eazy-E에 의해 만들어진 N.W.A는 이지 이를 비롯하여 닥터 드레 Dr.Dre, 아이스 큐브 Ice Cube, 디오씨 The D.O.C. 등 이후 웨스트코스트 랩 씬의 수퍼스타로 등장하는 이들이 몸담았던 그룹으로서도 유명하다. 데뷔 앨범 (1988)은 다분히 정치 의식적인 이스트코스트의 공격적인 랩/힙합과 챠트를 뒤흔든 랩 댄서들의 그것과는 달리 거리의 폭력, 범죄, 여성에 대한 무시와 혐오 등으로 가득한 거친 메시지와 더불어 배드보이 Bad Boy 이미지의 패션을 통해 이후 갱스터 랩퍼들과 거리의 흑인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이들은 동부의 하드코어 랩의 폭력과 공격성을 계승하되, 사회 의식적인 메시지를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것으로 대체했다. 동부 쪽에서 보이는 다소 교훈적이고 흑인성을 강조하는 세계는 이들의 철저하게 무법자적이고 개인적인 세계에 의해 조롱 당한다. 어쩌면 갱스터 랩은 하드코어 랩의 정치성과 랩 댄서들의 향락적인 모습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양식일지 모른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닥터 드레가 창안한 지 훵크 G-funk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데쓰 로 Death Row 레이블을 통해 1992년 발매된 닥터 드레의 [The Chronic]은 양식적 으로나 메시지 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웨스트코스트 랩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랩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양식이라 불리는 지 훵크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미드 템포로 진행하는 베이스라인의 강렬함과 고음으로 음산하게 진행하는 신시사이저의 날카로움이라는 음색의 대조로 특징 지워진다. 지 훵크 양식을 대표하는 "Nuthing But a G thang"은 한번 들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신시사이저의 선율과 저음에서 꿈틀거리는 베이스라인의 위압적인 그루브감이 지배한다. 여기에 스눕 도기 독의 묵직한 랩이 진행하는데, 이는 코러스와의 주고받음, 기타 사운드, 고음의 여성 보컬 하모니, 스크래치 등으로 인해 단순하면서도 전율적인 사운드를 만들어간다. 전체적인 사운드가 주는 위압적인 음향 세계는 폭력적인 가사와 더불어 선동적인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그루브감과 적당한 팝적 선율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갱스터 랩은 닥터 드레의 또 다른 수혜자인 랩 듀오 다 도그 파운드 Tha Dogg Pound로 인해 음악적으로 확장된다. 이들 앨범인 [Dogg Food](1995)는 지 훵크의 영역을 다양한 실험적인 믹스와 샘플링으로 넓혀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닥터 드레의 이복동생인 워렌 지 Warren G는 [Regulate... G funk era](1994)를 통해 지 훵크의 공격성을 훨씬 유연한 리듬과 팝적인 선율과 결합함으로써 그 영역을 R&B까지 확장하였다.

    1992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시기는 몇 년전 랩 댄서들이 그러했듯이 LA의 갱스터 랩퍼들이 팝 차트를 휩쓸던 시기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갱스터 랩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향락적이고 과장된 허장성세를 동시에 갖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갱스터라는 이미지는 적어도 흑인들에게 있어서는 스타라는 이미지에 다름 아니었다. 무법자적이고 화려한 갱스터의 세계는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있어서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은 갱스터가 되어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탈도덕성과 폭력성을 통해 지배 사회에 시비를 걺으로써 복수의 쾌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와 같은 갱스터들의 이미지는 갱스터 랩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당시 닥터 드레와 그의 동료들, 또는 그들이 발굴한 갱스터 랩퍼들은 제아무리 신인이라도 발표하는 앨범마다 즉시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따라서 갱스터를 둘러싼 화려함 이면에 존재하는 그늘진 모습이 갱스터 랩퍼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랩퍼를 둘러싸고 범죄와 폭력에 연루된 그늘진 모습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도, 또 이와 같은 모습이 갱스터 랩의 사양길을 재촉한 것도. 이처럼 갱스터 랩퍼의 굴곡진 역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는 투팩 2Pac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만능엔터테이너 투팩 샤커 Tupac Shakur는 1991년 잠시동안 관여했던 디지틀 언더그라운드 Digital Underground를 나와 솔로 랩퍼로 데뷔한 이후 몇 편의 힙합 영화에서 배우로 주가를 올리면서 뒷골목 흑인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올랐다. 영화 배우로서의 후광과 무기 소지와 총기 발포, 성희롱 사건 등 일견의 갱스터적 행각으로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여세를 몰아 1995년 드디어 [Me Against The World] 앨범으로 팝 차트 정상에 오르면서 최고의 랩퍼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감옥과 스튜디오를 오가면서 젊음을 보내던 그는 같은 해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감옥에서 데쓰 로 레이블의 수즈 나이트를 만나는데, 그가 보석금을 대신 지불하는 대가로 그의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랩 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인 [All Eyez On Me](1996)을 이듬해에 발표한다. 여기서 투팩은 닥터 드레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좀 더 하드 훵크한 리듬과 저음의 힘있는 래핑으로 네그리튜드에 대한 자부심, 성행위에 대한 노골적 찬양, 갱스터적 삶에 대한 지지, 뉴욕 랩퍼들에 대한 조소를 거침없이 묘사하였다.

    투팩은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성공의 정점에서 숱한 의문점을 남긴 채 총기 사고로 세상을 뜬다. 그는 갱스터 랩퍼 대부분이 한 장의 히트앨범을 남기고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는데 비해, 진정으로 흑인 청년들의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던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었다. 여기에는 블랙 팬더의 아들이라는 그의 출신과, 음악적 역정에 정확히 부합한 그의 삶의 굴곡이 네그리튜드에 기반한 정통성을 젊은이들에게 확신시켜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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